부정어 없이 살아보기,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시작
"오늘 하루 동안 '아니요', '안 돼요', '못 해요', '싫어요' 같은 부정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된 실험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 종일 '부정어' 없이 말하기 – 긍정 언어 실험기에 대한 글을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평소에도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려 노력해왔기에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험을 시작한 지 단 30분 만에 나는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착각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첫 번째 위기는 아침 출근길에 찾아왔다. 평소에는 “아 진짜 너무 피곤하다”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도 금지다.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너무…"라고 나온 순간, 즉시 머릿속 경보가 울렸다. ‘부정어! 삭제!’ 그리고는 생각을 고쳐서, “몸이 아직 덜 깼지만, 커피 마시면 좋아질 거야.”라고 입 밖에 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생각의 회로를 바꾸는 과정은 꽤나 낯설고 피곤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더 큰 난관이 있었다. 회의 중 동료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했을 때, 평소 같으면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라고 직설적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문장에는 무려 세 개의 부정어가 숨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꾹 참고, 이렇게 표현했다.
“그 접근도 흥미롭지만,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소한 문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 머릿속에서 부정어 필터링, 어휘 대체, 어조 순화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생각보다 머리가 굉장히 바빠졌다. 평소처럼 반사적으로 대답하면 실험이 실패할 수도 있으니, 말을 꺼내기 전 무조건 한 템포 쉬어야 했다.
점심시간에는 후배가 "오늘 메뉴 뭐 먹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내가 제일 먹기 싫은 메뉴인 순댓국을 말해왔다. 평소였다면 “그건 좀 별로인데…”라는 말이 자동 반응이었지만, 오늘은 ‘싫어’, ‘별로’ 모두 금지어였다. 그 순간 내가 택한 답은:
“순댓국도 괜찮지만, 오늘은 뭔가 좀 더 가볍고 산뜻한 게 땡기는 것 같아!”
문장의 내용은 같은 뜻을 전달했지만, 어감은 훨씬 유연하고 긍정적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건 단 하나. 부정어를 쓰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단어 몇 개를 조심하는 게 아니라 사고방식을 전환하는 깊은 작업이라는 것이었다.
이날 하루만 해도 수십 번 부정어가 머리를 스쳤다. “모르겠어”, “지금 말고 나중에”, “귀찮다”, “불가능해”, “싫어”, “짜증나” 등등. 이 모든 감정과 생각을 다른 말로 바꾸느라, 하루 종일 말을 할 때마다 두세 번은 더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이 낯선 불편함은 조금씩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내가 한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훨씬 부드러웠고, 대화의 톤도 차분해졌다.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서도 무의식적인 짜증이 덜 생겼다. 말투 하나로 하루의 기분이 좌우된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긍정 언어가 바꾸는 생각과 인간관계의 미묘한 변화들
실험이 절반 정도 지난 오후부터는, 언어의 변화가 내 생각과 감정의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지 말투만 바꾼다고 여겼던 것이, 이제는 내가 생각하는 방식,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감각을 느꼈다.
예를 들어보자. 평소에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왜 이렇게 안 되지?”, “이건 진짜 문제야”라는 식으로 반응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문장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야 했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
“이 부분은 도전 요소가 있는 부분이네.”
언뜻 보면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그 차이는 꽤 컸다. 전자는 좌절과 포기, 후자는 가능성과 시도를 담고 있었다. 이 사소한 언어의 차이가 곧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평소에 꽤 직설적인 스타일이라 회의나 협업 과정에서 종종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이건 안 될 텐데요?” 같은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철저히 '긍정 필터'를 끼고 말해야 했기에, 표현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결과적으로 대화가 훨씬 생산적이고, 덜 방어적이었다. 동료들 중 몇몇은 “오늘 말투 되게 차분하고 좋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그들과의 협업 흐름도 훨씬 매끄러워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저녁 무렵 가족과의 통화였다. 엄마는 늘 “왜 이렇게 바쁘냐?”, “또 약속이냐?” 같은 말로 잔소리를 시작하셨고, 나 역시 “아 진짜 또 그런 말…”이라며 부정어로 맞받아치는 게 평소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 반응이 달랐다. 엄마가 “오늘도 약속 있어?”라고 묻자, 나는
“응, 오늘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일이 있어. 다음엔 더 자주 연락드릴게요.”
라고 대답했다.
통화가 끝난 후, 나는 생전 처음으로 엄마에게 잔소리 한 마디 듣지 않고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확신했다. 부정어 하나 없이도 분명히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게 더 깊이 통한다는 것을 말이다.
긍정 언어가 남긴 것들 – 하루 실험이 준 진짜 선물
실험이 끝나고 난 후, 나는 내 일상 언어를 곰곰이 돌아보게 됐다. 얼마나 자주 부정어를 쓰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와 타인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바로 내 자신과의 대화였다. 평소의 나는 실수했을 때 "내가 왜 이 모양이지", "또 이걸 놓쳤네" 같은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상황에서도,
“조금 더 신경 쓰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이번에 경험이 하나 더 쌓였네.”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나갔다.
긍정 언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니 내 자존감에도 변화가 생겼다. 실수나 문제 앞에서 자책하기보다, 그 상황을 새로운 시도와 기회로 보는 시선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기분전환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태도의 근본적인 전환이었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 언어의 힘은 곧바로 전달되었다.
말의 어투가 바뀌니, 듣는 사람의 반응이 달라졌고, 대화 속 긴장감이나 거리감이 줄어들었다. 특히 후배들과의 소통에서 이런 효과가 두드러졌다. 평소보다 훨씬 더 열린 분위기에서 대화가 이어졌고, 그 속에서 내가 무언가를 조언하거나 제안할 때, 거부감이 훨씬 줄어들었다는 걸 느꼈다.
물론 현실적으로 늘 긍정 언어만을 사용하는 건 어렵다. 때로는 분명한 거절이나 단호한 표현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이 실험을 통해 나는 그 ‘거절’조차도 긍정적인 어법으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걸 배웠다.
예를 들어 “이건 안 돼요.” 대신
“이 방식은 지금 상황에선 어려울 수 있으니 다른 방법을 제안드릴게요.”
라고 말하면, 똑같은 메시지를 훨씬 부드럽고 협조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언어가 곧 태도이고, 태도가 곧 삶이다
‘하루 동안 부정어 없이 살기’는 단순한 언어 실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타인과 연결되는 방법을 완전히 다시 배운 하루였다.
이제 나는 여전히 부정어를 쓸 때도 있지만, 적어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의 순간이, 삶을 조금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든다는 걸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