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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전체를 외국어로만 쓰면 사고방식이 바뀔까?

by 스티카튜터 2025. 7. 17.

오늘은 일기 전체를 외국어로만 쓰면 사고방식이 바뀔까?라는 글에 대해서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일기 전체를 외국어로만 쓰면 사고방식이 바뀔까?
일기 전체를 외국어로만 쓰면 사고방식이 바뀔까?

 

외국어 일기의 시작, 왜 ‘쓰기’를 실험했을까?


저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회화 연습도 해보지만, 늘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 부족함은 단어 수나 문법의 이해도가 아니라, 그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는 힘’에 대한 갈증이었죠.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매일 쓰는 일기를, 한 달간 외국어로만 쓰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그날 바로 노트북의 언어 설정을 영어로 바꾸고, 일기장을 새로 마련했습니다. 물론 영어는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한 언어였고, 간단한 문장은 쓸 수 있었지만, 감정이나 생각, 복잡한 내면의 흐름을 ‘외국어’로 표현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일기는 하루를 돌아보는 나만의 대화이자, 깊은 사고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유를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만 풀어야 한다면? 처음엔 단어 선택이 너무 어렵고, 표현이 단순해져서 제가 쓴 문장이 마치 초등학생의 글 같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원래라면
“오늘은 아주 미묘한 기분이었다.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뭔가 복잡하고 겹겹이 쌓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떠오른 날이었다.”
라고 쓸 수 있는 걸, 영어로는

“I felt strange today. It was a mix of emotions, but I can’t really explain why.”
정도로만 정리되곤 했습니다.

표현력이 제한되니 내 감정도 얕게 느껴지고, 그 얕음 때문에 내 사고가 더 단순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실험의 흥미가 시작됐습니다.
언어가 생각을 제한하면, 감정과 사고 자체도 제한되는 걸까?
혹은 반대로, 단순화된 언어로 일기를 쓰면서 감정을 더 직관적으로 정리하는 힘이 생기는 걸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저는 매일 15분 이상 외국어로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영어뿐 아니라 가끔은 일본어나 프랑스어로도 시도했죠. 문법이 틀려도, 철자가 엉망이어도 괜찮았습니다. 중요한 건 ‘그 언어로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 그 자체였습니다.

 

외국어로 쓰는 나는 ‘다른 나’였다 – 사고방식의 미묘한 전환


한 달간 외국어로 일기를 쓰는 과정은 단순한 언어 실험을 넘어서 내 내면을 새롭게 보는 경험이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 점점 흥미로운 변화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로 일기를 쓸 때는 감정을 풍부하게 묘사하고,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다듬어가며 쓰곤 했습니다. “서운했다”, “속이 쓰리다”, “어딘가 허전하다”와 같은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나왔죠. 그런데 영어로 쓰다 보니 이런 감정 표현이 간결해졌습니다.

“I was disappointed.”
“I felt empty.”
이런 식으로 감정에 딱 맞는 단어 하나를 고르는 연습을 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감정이 구조화되고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어로는 ‘느낌’ 위주의 사고를 했다면, 영어로는 좀 더 논리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글쓰기가 됐어요. 복잡한 감정보다는 "Why did I feel like that?" 같은 질문을 던지고, 원인을 따져보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외국어로 쓰는 일기는 어쩌면 더 '이성적인 나'와의 대화였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문장을 간단하게 써야 하다 보니, 불필요한 감정의 잔재를 덜어내고 핵심적인 감정만 남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감정 쓰레기들을 분류하고 버리는 정리함 같았다고 할까요? 내 마음속에서도 정돈되지 않은 언어들은 외국어로는 쉽게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감정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재미있었던 건, 언어가 바뀌니 일기의 분위기와 나의 정체성도 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영어로 쓰면 다소 쿨하고 드라이한 느낌이 강해졌고, 일본어로 쓰면 감정의 여백이나 세세한 뉘앙스에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언어마다 문화적 배경과 감성의 결이 다르다 보니, ‘언어가 곧 성격을 결정한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결국 외국어로 쓰는 일기는, 그냥 다른 언어로 옮겨 쓰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해주는 경험이었습니다. 즉, 외국어 일기는 나를 바꾸는 거울이자 도구가 된 셈입니다.

 

‘쓰기’가 만든 연결, 실험 이후의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


실험을 끝내고 나서 다시 한국어로 일기를 썼을 때, 마치 오래된 친구와 다시 대화하는 듯한 반가움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느낀 건, 한국어로 일기를 쓸 때 나오는 감정의 깊이나 문장의 구조가 이전보다 훨씬 명료해졌다는 점이었죠.
왜일까요? 바로 외국어 일기 쓰기를 통해 생각을 구조화하고 간결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외국어 실력 향상이 아니라,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의 확장’이라는 더 큰 의미였습니다.

또한, 실험 이후 저는 일기의 쓰임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감정 발산, 스트레스 해소, 하루의 정리용이었다면
지금은 감정 정리 + 사고 훈련 + 표현 연습이라는 복합적인 목적이 생겼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한국어로 쓸 때는 감정에 휩쓸려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외국어로 쓸 때는 감정 자체를 다루는 방식이 더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변하면서, 현실 문제에 대해 좀 더 ‘거리 두기’를 할 수 있었어요. 이것은 저에게 정서적 자율성과 관찰자 시점을 주는 좋은 훈련이 되었죠.

실제로 이 실험을 하며 일기 속 문장 몇 가지를 나중에 SNS에 영어로 올렸는데,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단순한 표현이지만 진심이 담긴 글은 언어를 초월해 공감을 주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글을 쓴다는 건 언어의 수준을 넘어서 ‘나’를 정리하고, 표현하고, 연결하는 행위라는 것.”

이후 저는 일기를 이중 언어로 쓰기도 하고, 매주 한 번씩은 외국어 일기만 쓰는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가끔은 한국어로 쓴 일기를 영어로 번역하며 비교해보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어떤 언어로 나를 표현하느냐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을 계기로 저는 ‘언어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깨달았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내 감정과 사고가 녹아들기 시작하면, 그 언어는 더 이상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된 언어’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언어로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를 드러내주는 가장 정직한 공간이 됩니다. 번역기 없이도, 사전 없이도, 자기 언어로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과정. 그것이 바로 이 실험이 내 삶에 남긴 가장 큰 변화이자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