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달간 외국어 하나만 사용해보기 실험기에 대한 글을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실험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준비 과정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단순한 언어 습득을 넘어서 다른 세계관과 생각방식을 경험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영어와 일본어는 어느 정도 생활 회화가 가능했고, 에스페란토는 취미로만 간간이 접하던 언어였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영어를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일상 속에서 가장 널리 쓰이면서도, 여전히 저에겐 낯설게 느껴지는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은 단순히 "영어만 말하기" 수준이 아니라, 일상 속 모든 언어 활동을 영어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휴대폰 언어 설정 변경, 메신저와 이메일, SNS 포스팅, 일기, 책과 유튜브 콘텐츠, 음악 등 가능한 모든 언어 환경을 영어로 바꿨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미리 공지를 했습니다. “한 달간 영어로만 소통할 거니까 양해 부탁해.” 반은 장난 같지만 반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이 실험은 그냥 말뿐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느껴졌죠.
준비 과정에서는 몇 가지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회의를 영어로 진행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업무 시간 중에는 “최소한의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시간, 특히 개인적인 시간에는 철저하게 영어만 사용하기로 다짐했죠.
의외로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스마트폰이었습니다. 언어 설정을 영어로 바꾸자, 평소 익숙했던 앱 사용도 낯설어지고, 자동완성이나 오타 수정 기능도 모두 영어로 바뀌니 생각보다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일종의 ‘언어적 불편감’을 몸소 체험하는 과정이라 여겼습니다. 준비는 되었고, 그렇게 저의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사고방식과 감정의 변화 – 언어는 세계를 바꾼다
처음 며칠간은 마치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약간의 흥분감도 있었습니다. 영어라는 언어는 문법도 간결하고 표현도 직설적인 경우가 많아, 처음엔 오히려 사고가 단순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는 상황을 에둘러 말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해 표현하는 방식이 많은데, 영어에서는 ‘I don’t like it.’처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감정과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훈련”, 이는 단순한 언어 훈련이 아니라 자기 존중감 회복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감정 표현에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로는 "괜찮아요"처럼 애매하고 완충적인 표현을 자주 쓰는데, 영어로는 ‘It’s okay’ 또는 ‘I’m not fine’처럼 더 분명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언어의 틀 속에서 저의 감정도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영어로 사고를 하게 되면서 머릿속이 더 ‘논리적인 방식’으로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순한 기분일 수도 있지만, 마치 생각이 좀 더 구조화되고 정돈되는 느낌이었어요. 영어는 문장의 순서 자체가 사고를 체계화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논리적인 흐름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된 것 같습니다.
반면, 감정적으로는 약간의 거리감도 느꼈습니다. 슬픔이나 분노, 애정을 표현할 때 영어로는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 느낌이 있었고, 이는 모국어의 감정 밀도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언어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계, 깨달음, 그리고 실험 이후의 변화
한 달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습니다.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언어적 피로감’이 서서히 몰려왔습니다. 단어가 머릿속에서 바로 떠오르지 않거나,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쌓였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감정 교류에 제약이 생겼습니다.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거나, 감정적인 대화를 할 때 한국어의 미묘한 표현들이 그리워졌습니다.
또 하나의 한계는 내면의 목소리까지 영어로 바꾸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혼잣말, 꿈, 혹은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생각은 여전히 한국어였습니다. 언어는 단순히 말하고 쓰는 것 그 이상의 ‘나의 정체성’이라는 걸 절감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은 저에게 엄청난 전환점을 가져다줬습니다. 우선,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었습니다. 문법이 틀려도, 단어가 부족해도, “일단 말해보자”는 태도가 생겼습니다. 완벽함보다는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 것이죠.
또한,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연습을 통해 한국어에 대한 애정도 커졌습니다. 모국어가 얼마나 유려하고 깊이 있는 언어인지, 감정과 미묘함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정교한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죠. 결국 이 실험은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얻게 해준 여정이었습니다.
실험이 끝난 지금, 저는 두 가지 언어를 넘나드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감정을 담고, 영어로 논리를 정리하며, 두 언어 모두 저의 일부로 흡수되었죠. 그리고 다음엔 일본어나 에스페란토어로 실험을 해볼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익숙함을 잠시 내려놓고 낯선 세계에 나를 던지는 경험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체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