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바꾸면 세계가 달라진다 – 실험의 취지와 준비 과정
“만약 하루마다 언어를 바꾼다면, 나는 얼마나 다른 삶을 살게 될까?”
오늘은 하루에 외국어 하나씩 - 7개 언어로 살아본 일주일간의 기록에 대한 글을 소개해드릴려고 합니다.
어느 날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이 질문이 이번 실험의 출발점이었다. 단순히 여러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 다른 언어로 사고하고 소통하며 살아보기.
한 언어에 하루를 온전히 바친다면, 과연 그 언어가 가진 고유한 리듬, 문화, 정서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그 실험을 나는 7일 동안, 각각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에스페란토로 진행하기로 했다.
실험을 앞두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각 언어별로 기본적인 생활 표현을 익히는 것이었다.
기상 인사, 감정 표현, 질문과 대답, 일기쓰기, 메시지 작성, 검색어 입력 등 일상적인 행위에서 최소한의 기능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영어와 일본어 정도는 어느 정도 익숙했지만, 프랑스어나 러시아어, 특히 에스페란토는 나에게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다.
또 하나 중요한 준비는, 언어별 환경 세팅이었다.
각 언어를 사용하는 날마다 휴대폰 언어를 해당 언어로 바꾸고, 유튜브나 SNS 추천 알고리즘도 해당 언어 콘텐츠로 맞췄다.
검색어를 입력할 때도 해당 언어로만 하고, 메신저에서도 모국어는 금지.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하루를 그 언어로 살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실험은 단순한 언어 습득이 아니라, 언어가 사고방식과 감정, 일상의 리듬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는 과정이었다.
어떤 언어는 부드럽고, 어떤 언어는 단호했다. 어떤 언어는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내기에 좋았고, 또 어떤 언어는 복잡한 개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 더 적합했다.
이 글을 통해 나는 그 7일간, 7개의 언어가 각각 나에게 선사한 감각과 감정, 사고의 결을 나누고자 한다.
이 실험은 단지 외국어 공부를 넘어, 세계와의 접속 방식 자체를 바꾸는 여행이었다.
하루하루 다른 자아로 – 7개의 언어, 7개의 리듬
하루를 하나의 언어에 바친다는 것은 단지 말의 도구를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보는 일에 가까웠다. 각 언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였고,
나는 그 언어를 입에 담는 순간, 그 문화와 정서의 일부가 되었다.
그 변화는 놀라울 만큼 뚜렷했다. 아래는 각 언어를 사용했던 날의 느낌과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다.
1일차 – 영어: 익숙함 속의 효율성과 직설성
영어는 내가 가장 익숙한 외국어였다. 첫날이 영어로 시작되니 비교적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흥미로웠던 점은, 영어로 말하고 글을 쓰다 보니 의도적으로 감정을 줄이고 요점을 강조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감정적인 표현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 생각은 이거야” 같은 직설적인 구조를 선호하게 되었고,
자신감이 약간 더해진 느낌도 있었다. 이는 평소 내가 한국어로 쓸 때보다 더 단단한 자아가 형성된 것 같아 흥미로웠다.
2일차 – 일본어: 정중함과 내향성의 리듬
일본어를 사용하는 둘째 날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문장을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 말해야 예의가 될까?”, “이 표현이 실례는 아닐까?”라는 고민이 먼저 들었고,
자연스럽게 내향적인 태도와 배려 중심의 사고방식이 형성되었다.
존댓말의 계층 구조나 담화의 정중함이 나의 말투뿐 아니라 사고 방식 전체를 유순하고 섬세하게 바꾸는 것을 경험했다.
3일차 – 스페인어: 감정의 리듬, 활기와 리듬감
스페인어의 날은 그야말로 에너지 폭발이었다.
억양이 강하고 감정이 풍부하게 실리는 스페인어를 구사하면서, 나도 모르게 말투가 활기차졌고, 제스처도 커졌다.
단어 하나하나가 흥미진진했고, 친구에게 보내는 메시지조차 “¡Qué bonito!” “¡Vamos!”와 같은 감탄과 격려의 언어로 가득 찼다.
이날은 평소보다 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4일차 – 독일어: 구조적 사고와 단단한 말의 힘
독일어의 특징은 정확성과 논리적 구성에 있다.
문장을 만들기 위해 문법 구조를 신중히 고려하다 보니, 말하기 전에도 더 깊게 사고하고, 더 천천히 정리하게 되었다.
‘이 말이 문법적으로 정확한가’, ‘단어 선택은 적절한가’ 같은 질문이 늘 따라붙었고,
그 결과 내 사고방식도 더 단단해지고, 말 한 마디에 책임감을 갖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5일차 – 프랑스어: 세련됨과 감성의 언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날은 마치 감수성의 포장지를 입은 듯한 하루였다.
소리 하나하나가 우아했고, 단어 선택에도 아름다움을 신경 쓰게 되었다.
“이 표현이 좀 더 우아할까?”, “이 문장은 너무 무르지 않을까?”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들며,
내 사고방식에도 미적 기준과 감정적 세밀함이 들어왔다.
마치 내가 예술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6일차 – 러시아어: 낯설지만 묵직한 깊이
러시아어는 내가 거의 처음 접하는 언어였다.
소리 자체가 낮고 묵직한 느낌을 주었고, 단어 하나를 배우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어려운 구조 덕분에 나는 가장 조용하고, 신중한 상태로 하루를 살게 되었다.
말의 무게감이 컸기에 말수가 줄었고, 자연스럽게 내면으로 향하는 사색의 시간이 많아졌다.
7일차 – 에스페란토: 자유로움과 실험정신
마지막 날은 인공어인 에스페란토로 보내기로 했다.
어딘가에 실제로 사용자가 많지는 않지만, 배우기 쉬운 구조 덕분에 빠르게 표현을 익힐 수 있었고,
말 그대로 자유롭고 실험적인 하루가 되었다.
어떤 문화에 고정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내 사고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고 표현하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다.
언어는 삶의 무늬다 – 다언어 실험이 남긴 것들
7일간의 실험이 끝나고 나서, 나는 단순히 ‘외국어 공부를 했다’는 느낌보다도
‘7가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언어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 내가 어떤 감정과 태도를 갖는가를 결정짓는 틀이라는 사실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언어에 따라 내가 취하는 자세와 감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떤 언어를 사용할 때는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졌고,
어떤 언어를 사용할 때는 몸이 들썩이며 말이 빨라졌다.
그건 단순히 단어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언어가 형성된 문화와 역사,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내게도 잠시나마 스며들었던 것이다.
또한 이 실험은 다언어를 단순히 병렬적으로 학습하는 게 아니라,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통합시키는 방식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매일 아침 ‘오늘은 무슨 언어지?’라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나는 단지 언어가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과 하루의 무늬를 입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실험을 마친 후, 나는 더 이상 외국어를 ‘해야 할 것’으로 느끼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외국어는 내게 있어서 또 하나의 나를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되었다.
한 언어가 줄 수 있는 사고의 틀과 정서의 결이 다르기 때문에, 언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삶의 색깔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