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첫날, 말의 무게를 실감하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오늘은 일주일간 침묵 수행 - 말 없이 생활해보기라는 글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그 선언을 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말의 진중함을 느꼈다. 말없이 살아가는 건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나 자신을 연결하던 주요 도구 하나를 끊어내는 행위였다.
침묵 수행의 첫날, 나는 그간 너무 쉽게 입 밖으로 내뱉던 말들을 자꾸 떠올리게 됐다. 식탁에 앉아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으며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 일,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하지 않는 일, 회사에서 메일 대신 몸짓과 표정만으로 의사를 전하려 애쓰는 일.
모든 순간이 불편했고, 나는 하루 종일 말을 삼키는 일에 온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놀라운 것도 있었다.
침묵 속에 들어서자, 그동안 무심코 넘기던 자연의 소리, 사람들의 표정, 내면의 생각들이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동료가 던지는 짧은 농담에 웃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가만히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을 뿐인데, 오히려 그 사람이 나를 ‘경청하는 사람’으로 느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틀째가 되었을 때, 나는 하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나는 얼마나 많은 말을 불필요하게 하고 있었나?’
우리는 누군가가 침묵하면 불편해한다. 대화가 끊기면 어색함을 메우기 위해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다. 하지만 일주일간의 침묵 수행을 시작하며 내가 체감한 건, ‘말하지 않는 용기’는 오히려 강력한 존재감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누군가는 나의 침묵 속에서 무게를 느꼈다.
침묵 수행의 가장 큰 장애물은 외부가 아니라 내 안의 소란함이었다. 말을 하지 않자, 내 머릿속이 너무 시끄럽다는 걸 깨달았다. 말 대신 머릿속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다니고, 그걸 입으로 내지 못하니 혼자서 되새기고, 다시 해석하고, 또 걱정하고. 말 없이도 우리는 하루에 수만 가지의 문장을 떠올리며 스스로와 대화하고 있었다.
이틀, 사흘이 지나자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내 안의 대화도 줄어들었고, 마침내 나는 침묵의 평온함을 조금은 맛볼 수 있었다. 그것은 조용한 산사의 고요함 같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도시 한복판, 지하철 안에서도 느껴지는 마음 안의 정적이었다. 말이 멈추자, 나의 감정과 반응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고, 나는 나를 좀 더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말이 없을 때 드러나는 진짜 관계
침묵 수행의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나는 이 실험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체감하게 되었다. 말없이 지낸다는 건 단순한 ‘나의 도전’이 아니라, 타인과 맺는 관계 전체를 바꾸는 행위였다.
말을 하지 않자, 나는 가족과의 대화에서 철저히 수신자가 되었다. 그간 내가 얼마나 많은 ‘지시형 말’을 해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거 좀 해줘”,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왜 그렇게 말해?”
이런 말들은 일상의 일부였고, 가족을 통제하고 조율하기 위한 무의식적 언어 습관이었다. 그러나 말이 사라진 자리엔 선택과 자유가 남았다. 내가 강요하지 않자,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돕거나 외면했다. 그 안에서 진짜 관계의 모습이 드러났다.
직장에서는 더욱 미묘했다.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불편한 사람’이 되기 쉽다. 특히 회의 자리에서 나는 존재감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을 하지 않아도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침묵 속에서 열심히 듣고, 필요한 행동을 먼저 했고, 메모와 몸짓으로 전달하는 데 더 집중했다. 그 결과, 어떤 동료는 “요즘 더 차분해지고 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관계 속에서 말이 사라지면, 대신 떠오르는 건 비언어적 신호다. 표정, 눈빛, 손동작, 미묘한 거리감, 타이밍. 이 모든 것들이 관계의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나는 침묵 속에서 그 언어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말없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연습, 말을 하지 않고도 공감하는 자세. 그 모든 게 내게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왔다.
침묵 수행은 나를 외롭게 만들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연결되게 했다. 말은 때로 벽이 되기도 한다. 상처를 주기도 하고, 필요 없는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침묵은 벽이 아닌 투명한 창 같았다. 말이 없으니 감정이 맑게 비쳤고, 나 자신도 더 솔직하게 드러났다.
이 실험을 통해 나는 말의 효용보다 말의 한계를 더 많이 깨달았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 말이 오히려 왜곡하는 것들, 말이 많아질수록 멀어지는 감정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말 없이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침묵의 끝에서 다시 말하기 – 새로운 언어 감각의 시작
일주일이 지나고, 나는 다시 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말은 예전의 말과는 결이 달랐다.
침묵 이후의 첫마디는 “안녕하세요”였다. 그 단순한 인사말이 이렇게 따뜻하고 깊게 들릴 줄 몰랐다. 말이 다시 돌아온 세계는 여전히 똑같았지만, 내가 사용하는 말의 질감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침묵 수행이 끝난 후 가장 크게 느낀 건, 말을 아껴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농담, 억지로 이어가는 대화, 침묵이 어색해서 던지는 아무 말—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대신, 나는 말의 ‘필요’와 ‘의미’를 더 천천히 생각하고 선택하게 되었다.
또한 이 실험은 내게 언어 이전의 나를 만나게 했다. 우리는 늘 말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한다. 나는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취향을 갖고 있으며,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함으로써 나 자신을 만든다. 그런데 일주일간 말을 하지 않자, 그 모든 정의가 멈췄다. 대신 ‘존재 자체로 충분한 나’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회복의 시간이었다. 머릿속 잡음이 줄고, 내 안의 공간이 생겼다. 그 안에서 나는 감정도 정리하고, 복잡한 인간관계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무엇보다도, 말의 무게와 힘을 진심으로 깨달았기에, 그 이후의 말들은 더 조심스럽고, 더 정직해질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변화는 타인의 침묵을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이전에는 누군가 말이 없으면 불편했다. 나를 싫어하나? 무슨 일이 있나?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지만 지금은 침묵도 하나의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그 안에 어떤 감정이 머물고 있는지, 무슨 상황인지 상상하고 기다리는 여유가 생겼다.
일주일간의 침묵은 짧은 여행 같았다. 나는 그 여행을 통해 내 말의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었다. 어느 언덕에서는 더 크게 말하고, 어떤 골짜기에서는 조용히 눈빛만 주는 법을. 그리고 그 말들 너머에는 침묵이라는 새로운 경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