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언어로 사고하는 첫 시도 – 익숙함이 깨질 때
오늘은 외국어로 생각하기 훈련 - 사고방식의 변화 실험에 대한 글을 소개해드릴려고 합니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외국어로 표현해보자.”
이 간단한 문장을 실천하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이 실험은 ‘외국어 말하기’가 아니라
‘외국어로 생각하기’였다. 단어를 번역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 언어로 나의 인지와 감정을 조립하는 작업이었다.
첫날 아침,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영어로 바꿔보려 했다.
"오늘은 뭘 입지?" → "What should I wear today?"
이런 수준의 생각 전환은 수월했다. 그러나 조금 더 복잡한 생각—“어제 그 말은 너무 무례했던 것 같아.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를 영어로 정리하려 했을 때, 생각이 뚝 끊겼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자 감정도 애매해졌고, 결국 그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넘기게 되었다.
이건 단지 어휘 부족의 문제가 아니었다. 언어가 사고를 뒷받침하지 못할 때, 감정조차 희미해지는 경험이었다. 익숙한 언어가 없으면 생각도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약간의 불안을 느꼈다.
외국어로 생각하는 연습은 단순히 “영어 회화 실력 늘리기” 같은 실용적 목표가 아니었다. 내 내면의 목소리를 바꾸는 시도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버스를 놓쳤을 때, 보통은 "아, 망했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영어로 바꾸려니 “This sucks” 같은 표현이 떠올랐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기분이 덜 나빠졌다. 영어라는 언어의 정서적 거리감이 감정을 중화시킨 것이다.
반대로 프랑스어로 생각할 때는 감정 표현이 훨씬 극적으로 변했다. 같은 실망스러운 상황에서도 "C’est la vie"라는 표현 하나로 스스로를 위로하게 됐다. 언어가 곧 문화이고, 문화는 감정 표현의 틀을 만든다는 걸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외국어 실력의 문제를 넘어서, 내 사고방식 자체를 다른 문화의 렌즈로 들여다보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언어를 바꾸면, 세계를 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외국어로 생각하기는 곧 나를 새롭게 구조화하는 일이었다.
사고방식은 언어를 닮는다 – 감정, 논리, 선택의 변화
이 실험을 2주 이상 지속하면서, 나는 점점 놀라운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외국어로 생각하는 시간은 점차 늘어났고, 머릿속에서 ‘자기 검열’이 줄어들었다. 특히, 내가 선택하는 사고의 방향과 표현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가장 크게 느껴진 변화는 ‘결정의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어로는 "어떻게든 해보자", "끝까지 책임져야지" 같은 말들이 흔하다. 하지만 영어로는 "Let’s see how it goes", "You can always change your mind"처럼 훨씬 유연하고 자기 중심적인 표현들이 많았다. 이런 언어 표현에 익숙해지자, 나 또한 ‘모든 걸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감정 표현도 변화했다. 한국어에서의 감정 표현은 대체로 간접적이고, 맥락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일본어로 사고하려 하면, 미묘한 뉘앙스 조절이 필요했다. ‘죄송합니다’와 ‘실례했습니다’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했고, 감정의 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섬세함이 훈련되었다.
또한 에스페란토로 생각했을 땐, 단어가 단순하고 중립적이기에 감정을 극대화하는 대신 상황의 본질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불안해’라고 생각하는 대신,
“Mi sentas min maltrankvila.”
(나는 안정되지 않은 느낌이 들어.)
이렇게 말하는 순간, ‘불안’이라는 감정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였다. 언어가 감정을 중화하거나 구조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걸 실감했다.
언어가 사고방식을 지배한다는 건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었다. 외국어로 생각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지’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다. 내가 평소에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던 부분도 외국어의 논리 구조를 빌려 분석하고 나면, 훨씬 간단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언어의 문법 구조 또한 사고 흐름에 영향을 줬다. 독일어처럼 문장 끝에 동사가 오는 구조는 끝까지 생각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스페인어처럼 시제가 섬세한 언어는 행동의 맥락과 시간감각을 명확히 구분하게 했다. 이렇게 외국어는 나의 ‘머릿속 사용설명서’를 새로 쓰는 작업이 되었다.
낯선 언어로 나를 재발견하다 – 외국어 사고의 놀라운 선물들
실험이 끝나갈 무렵, 나는 이제 외국어로 생각하는 시간이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출근길, 카페 주문할 때, 이메일을 쓸 때조차도 머릿속에서 ‘내가 쓰는 언어’를 의식하며 고르게 되었다. 어떤 날은 스페인어로 기분을 표현했고, 또 어떤 날은 일본어로 감사를 되새겼다.
이 경험을 통해 무엇보다도 크게 얻은 건 바로 ‘정체성의 유연성’이었다. 한국어를 사용할 때의 나는 사회적 책임감이 강하고 예의 바르며, 맥락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영어로 생각하면, 나는 자기표현이 뚜렷하고, 감정보다 사실과 판단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었다. 언어가 달라질 때마다 내 모습의 어떤 부분이 더 도드라지거나 사라지기도 했다.
외국어로 사고한다는 것은 결국, 여러 개의 자아를 번갈아 입어보는 것과도 같았다.
한국어로는 차마 못 했을 말도, 프랑스어로는 유연하게 표현할 수 있었고, 영어로는 더 쉽게 ‘No’를 말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언어의 변화가 아니라, 감정 처리 방식과 타인과의 거리감 설정, 자기 존중 방식까지 변화시킨 결과였다.
이 실험을 통해 나는 감정과 이성, 직관과 논리를 조율하는 언어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그 언어가 가진 문화적 배경, 감정의 진폭, 표현의 여백이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이 내 사고방식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훈련은 나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제시해주었다. 내 언어 하나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시선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의 감정 반응은 보다 유연해졌고, 인간관계에서도 더 다정하고 온화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